공공장소 출입문 곳곳에는 ‘음식 반입 금지’ 문구 만큼이나 눈에 띄는 안내 표시가 있는데요. ‘반려동물 출입 금지’, 저는 그 스티커를 볼 때마다 그 안에 갇힌 강아지 픽토그램을 구출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강아지 주위를 둘러싼 붉은 테두리는 너무나도 견고해 보입니다. 잠시 머무를 곳을 찾아온 강아지가 문 앞에서 그 스티커를 본다면 아마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이곳은 나를 환영해주는 곳이 아니구나.’ 거대한 문을 열어젖히기에는 자신이 너무나도 작은 존재임을 깨닫고 좌절할지도 모릅니다.
다행인 건, 최근 들어 이 안내 표시를 과감하게 제거하려는 공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중 미술관도 포함되어 있고요. 전시장 안을 누비며 그림을 멀뚱멀뚱 감상하고 있을 개 한 마리를 상상해보세요. 어딘가 동화 속에 등장할 거 같은 이야기이지만, 언젠가부터 드문드문 이러한 귀여운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 모두 한 번쯤 거대한 명작 앞에 서 있는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나본 적이 있을 거예요. 다들 ‘파트라슈’ 아시죠? 이름만 들어도, 파트라슈가 왜 그림 앞에 서게 되었는지 어렴풋하게 떠오를 겁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을 이루지 못한, 자신의 유일한 친구 네로를 위로해주고자 그 자리에 와있던 것이죠.
유년 시절의 저는 동화를 읽으며 어린 소년에게 이입하다가도, 그 뒤에 숨겨진 파트라슈의 여정을 상상해보곤 했습니다. 동화 속엔 끝도 없는 설원을 헤매는 장면 외엔 자세히 적혀있지 않았거든요. 파트라슈는 어떻게 그 그림 앞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그림이 걸려있던 곳은 성당이었고, 그 또한 반려동물에게 너그러운 공간은 아니었을 겁니다. 개 한 마리가 넓고 긴 복도를 지나, 그림 앞에 서기까지 얼마나 힘겨웠을지. 혹여나 누군가에게 들켜서 쫓겨나진 않았을지 가슴을 졸이며 페이지를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플란다스의 개가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유는 충격적인 결말이 주는 긴 여운 때문일 테지요. 당시 어렸던 저에게 소년이 겪었던 비극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웠습니다. 만약 파트라슈가 주인공이었다면 이 동화의 결말은 조금 달라졌을 것입니다. 버림받았던 강아지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주인을 만나, 그 곁에서 함께 눈을 감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조금 위로가 되는 기분입니다. 다만 못내 마음이 쓰였던 건 파트라슈가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림 때문입니다. 네로는 먼 길을 돌아 자신을 찾아낸 파트라슈를 끌어안고, 루벤스의 <성모승천>을 함께 봅니다. <성모승천>은 실제로 보면 말을 잃을 정도로 화려한 색채와 풍부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들 이야기 합니다. 성모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담아낸 그림은 키 작은 아이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더 압도적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어마어마한 그림 속에는 인간의 형상을 한 존재들만 가득할 뿐 동물들을 위한 자리는 없었습니다. 자신보다 몇 배는 더 큰 그림을 올려다보던 파트라슈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네로의 곁에 가만히 누워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파트라슈가 그 그림 속에서 무엇을 발견했을지, 어떤 감각을 느꼈을지 알 수 없는 채로 이야기는 끝이 나버렸지요.
어린 시절, 제게 큰 의문을 남겼던 그 장면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종종 그 물음이 생각날 때면 주위를 둘러보곤 해요. 제 눈 앞에 펼쳐진, 이전과 조금 달라진 풍경을 보며 답을 정리해보려 하죠.
주인 곁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강아지를 보고 있자면, ‘어쩌면 파트라슈도 다른 강아지로 환생해 주인과 함께 그 공간을 거닐고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에 빠지곤 합니다. 이제서야 그림 앞에 동물 친구들을 정식으로 초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 오래 걸린 것 같긴 해요. 물론 미술관이 그들에게 얼마나 좋은 공간이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누군가는 ‘동물들이 인간이 만든 작품을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하고 의문을 가질 지도 모르겠죠. 맞아요, 그들이 그림 한 점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우린 들어본 적이 없으므로 알 수 없지요. 그렇지만 캔버스 너머 자신과 닮은 친구를 보며 꼬리를 흔드는 걸 발견하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혹시 그림이 마음에 들었나?’하고 그들이 보내는 신호를 헤아려볼 수도 있겠죠. 어쩌면 이를 시작으로 동물들과 조금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될 지도요. 반려동물과 예술에 대해 논하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서로가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계절에 첫인사를 건네게 되어, 다정한 상상을 마음껏 들려줄 수 있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