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예술이 합일된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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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Park Sunyoung
스스로 매혹적으로 느끼는 예술, 디자인, 건축, 여행, 인물에 대한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 글을 쓰는 일을 넘어 공간과 물건, 사람들의 이야기가 관계되는 순간을 기획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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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만난 (자연)
지그시 눈을 감게 되네요. 미술관에서 마주한 모든 것 중, 어두운 망막에서 여전히 아른거리는 것들을 떠올려 봅니다. 요동치던 푸르름과 대리석 조각 표면에 머물며 훑어내던 빛, 둘러싸인 그림들을 사색하다가 마주친 창밖의 유유한 구름. 자연이야말로 시각과 내면을 동시에 자극하는 강렬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연은 자연으로 인식할 때 비로소 만날 수 있게 되며, 그것을 제대로 보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예술작품의 영속성을 공고히 하고, 예술의 역사성과 동시대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미술관이라는 장소는 역설적으로 자연을 가장 드라마틱하고 진실하게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됩니다. 저에게는 그랬어요. 제도화된 예술과 대척 혹은 조응을 이루는 자연은 미술관이라는 필터를 통해 경험될 때, 때론 예술의 기원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모네와 세잔의 주제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자연과 예술이 합일된 미술관,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자장으로 다가온 미술관 두 곳으로 여러분과 떠나보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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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셀 홈브로이히 미술관 (Museum Insel Hombroich) ©박선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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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뒤셀도르프에서 40분을 달리면 '인셀 홈브로이히'라는 뮤지엄에 당도합니다. 늪지였던 드넓은 대지에 16개의 벽돌 건물이 세워진 이곳은 광활한 자연과 예술의 영속성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곳이죠. 부동산 중개로 큰 성공을 거둔 미술품 컬렉터 칼 하인리히 뮐러는 1982년 자신의 컬렉션을 소장할 미술관을 짓기로 결심합니다. 뮐러와 절친했던 조각가 에르빈 헤리히, 아나톨 헤르츠펠트가 동참해 자연 속 절묘한 자리마다 벽돌 건물을 짓고 사색적인 조각들을 설치했어요. 1987년의 일이었죠. 비밀스러운 발길만 이어지던 이곳은 최근 수많은 예술 순례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이르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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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특별한 건 무엇보다 기존의 미술관이 갖는 형식적인 기준들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이에요. 그곳으로의 진입은 건물이 아닌 자연을 헤매는 일부터 시작되거든요. 돌길을 걷고, 나무 사이를 지나다 보면 건물을 하나씩 만나게 되는데 어떤 전시장은 작품이 하나도 없이 텅 비어있답니다. 그 안에서는 어떤 소리의 떨림과 파장, 빛이 들이치는 광경을 만나게 되지요. 공간 자체가 하나의 건축적 조각인 셈입니다. 어느 여름 오후, 그곳에 들어섰을 때 어느 여성 관람객이 작게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텅 빈 공간을 자신의 목소리로 채우며, 그 소리가 공명하는 걸 느끼고 있었죠. 함께 머물던 저와 다른 관람객들은 예측하지 못한 순간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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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빈 건물과 숲을 지나쳐, 비로소 그림이 걸린 전시장 안을 거닐고 있네요. 코린트의 봄볕 같은 회화, 그라우브너의 추상화, 아르프의 조형적인 캔버스, 크메르의 조각들이 어우러진 공간.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컬렉터의 손과 눈의 위대함을 실감하는 순간입니다. 인셀 홈브로이히의 모든 작품에는 캡션이 없어요. 아무런 설명도 친절한 안내도 존재하지 않죠. 이곳에서 자연과 예술작품을 평행하게 바라보도록 하는 건 관람자의 쉼 없는 의지와 지성일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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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셀 홈브로이히 미술관, 좌 ©박선영, 우 ©전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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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 있는 전시장 문을 통해 바람과 햇살, 그리고 나무에서 낙하한 낙엽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바닥에 뒹굴고 있어요. 이 여정 속에서는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운 날엔 황량한 바람을 견뎌야 합니다. 인셀 홈브로이히에서는 자연을 품에 안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경험이 될 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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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프리덴(Waldfrieden) 조각공원 ©박선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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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독일 부퍼탈이라는 도시로 가볼게요. 수목이 무성한 삼림지대에 위치한 발트프리덴(Waldfrieden) 조각공원은 2006년에 조각가 토니 크랙(Tony Cragg) 재단이 조성한 곳이에요. 발트프리덴은 1940년대에 이곳에 지어진 빌라 이름 '하우스 발트프리덴'에서 유래하는데, 토니 크랙은 형태적으로나 개념적으로 자신의 작품과 연결되는 이 집을 발견한 걸 두고 '운명적'이었다고 말합니다. 거대한 소용돌이 같기도 하고, 조개 껍데기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빌라는 건축가 프란츠 크라우스(Franz Krause)가 지었습니다. 한때 예술가 빌리 바우마이스터(Willi Baumeister)와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가 은신하며 예술 행위를 벌인 파라다이스이기도 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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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부지 안에는 토니 크랙과 리처드 디컨, 헨리 무어와 빌헬름 문트의 조각 40여 점이 설치되어 있어요. 한눈에는 절대 들어오지 않는, 알알이 숨겨진 조형의 물성들을 찾아 육중한 밤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숲 사이를 헤매야만 해요. 회전하는 횡단면이 변형과 소멸을 반복하며 상승하는 토니 크랙의 조각들은 밑바닥부터 동요하는 시지각적 경험을 선사하는데요. 더 깊은 숲속에 누워있는 토니 크랙의 조각은 마치 솟아오른 바위 같기도 하고, 퇴적된 흙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한 “숲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긴 축, 예술과 자연 사이의 긴장”이 아니었을까요. 미술관에서 자연을 만날 때 우리 감각은 더욱 곧추서게 됩니다. 그건 예술가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거에요. 단 한 순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시각각 새로움을 던져주는 존재는 자연이 유일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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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미술관에서 만난 ( )
우리는 흔히 미술관을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이라 여깁니다. 내 맘을 뒤흔드는 무언가를 마주치길 기대하며 그곳으로 향합니다. 물론 그 무언가가 ‘작품’일 거라 장담할 순 없습니다. 수많은 명작과 여백 사이를 헤매던 도중, 우연히 시선이 멈춘 곳에서 큰 울림을 느낄 수도 있을 테니까요. 미술관에 간다는 건 결국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걸 보러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번 ‘P.S 미술관에서 만난 ( )’ 시리즈에서는 미술관을 구석구석 느끼다가 의외의 장면 앞에 오래 서 있던 분들의 경험담을 들려드립니다. 시선을 멀리 두고 공간을 넓게 둘러보세요. 사람, 작품, 공간 자체, 주변을 감싸는 자연... 전부 다 영감이 될 수 있답니다. 애정을 담아 한 발짝 다가서 본다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감각해본다면 더욱 다채로운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01 P.S 미술관에서 만난 (사람들), 전혜림 에디터
#02 P.S 미술관에서 만난 (바다), 오은재 에디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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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전혜림 DESIGNER 제민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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