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을 감각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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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아 Moa Kim
글을 쓰고 연기를 합니다. 허남훈 감독과 함께 ‘커플의 소리‘ 프로젝트를 진행중입니다. 「À Mouchamps」과 사계절의 기록과 사유를 담은 「Conte D’Hiver」, 「Conte De Printemps」, 「Conte D’été」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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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만난 ( 음악 )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을 무엇을 하고 있나요? 아니 무엇을 감각하고 계시는지요? 제가 묻고자 하는 바는 지금의 감각입니다.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답 보다는 ‘커피를 맛보고 있다’. 혹은 ‘걷고 있다’는 답보다 ‘땅을 밟고 있다’는 답을 더 듣고 싶어요. 왜냐하면 저에게는 감각하는 삶, 느껴야만 닿을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확신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소박한 질문으로 시작해, 이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볼게요. 서툴고 거친 생각을 감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또 다른 질문을 던질게요. 최근에 다녀온 미술관에서 무엇을 들으셨나요? 시각을 넘어 청각으로 기억되는 미술관에서의 장면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억 속 전등 스위치를 눌러 환하게 불을 밝혀보세요. 제 마음에 담았던 것들 위로 불을 밝히니 눈앞에 늘어선 건 모두 음악이었어요. 미술관에 들어서면서, 관람하는 동안, 잠시 휴식하며, 이렇게 크게 세 장면 속에서 유난히도 기억에 남았던 음악을 나눠보겠습니다. 한 미술관이 아니기에 저와 함께 이 나라 그리고 저 동네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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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장면: 미술관에 들어서면서_Hiroshi Yoshimura (Clouds)
부암동 환기 미술관을 무척 좋아합니다. 엉킨 생각과 감정의 머리를 가지런히 빗고 싶을 때마다 찾아가요. 자주는 못 가도 마음은 늘 그곳에 가 있어요. 한참 복잡하던 때,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그곳에 갔던 날, 미술관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운동화의 밑창을 타고 따뜻한 땅의 온기가 전해졌어요. 미술관의 문을 열었을 땐 낮은 조도에 높은 천장의 공간이 처음 우리를 맞이했어요. 순간 마음에 비를 내리던 구름 사이사이를 비집고 빛이 내리쬐는 황홀한 기분이 들었죠. 귓가에 맴도는 공간의 분위기가 남편이 좋아하는 앰비언트 뮤지션 히로시 요시무라의 'Clouds'를 떠올리게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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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와 김향안. 그 둘의 이야기는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예요. 김향안 여사는 1974년 뉴욕에서 타계한 남편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모으고 전시하기 위해 1994년 부암동에 환기 미술관을 설립했습니다. 그의 작품을 정리하며 여생을 보내셨어요. 저는 지인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다가도 끝에 꼭 주문처럼 내뱉는 문장이 있습니다. '사랑이 전부다'. 행복한 장면 속에는 언제나 '사랑'이 있거든요. 서로의 어둠 위로 빛이 되어주고, 서로의 빛 위로 구름이 되어주며 함께 가는 사람들.
간결한 멜로디의 적절한 배합은 김환기와 김향안의 사랑이 묻어나는 환기 미술관에 첫걸음을 내디딘 순간 울려 퍼졌습니다. 힘겨울 때 유독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태도가 우러나오기 마련이죠. 3년 전의 저는 감당하기 어렵게 벌어진 삶의 균열을 메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어요. 얇아진 감정 위에 ‘Clouds’가 둥실 떠오른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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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장면: 관람을 하는 동안_ Don McLaean (Vincent)
자, 이제는 파리와 뉴욕으로 걸음을 옮길게요. 먼저 도착한 곳은 파리입니다. 센 강을 가운데 두고 루브르 박물관과 마주하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 인상파 회화 중심의 작품들이 전시된 오래된 기차역을 그대로 살려 매만진 아름다운 그곳에서 십여 년 전 반 고흐의 작품을 처음 만났습니다. 가을의 끝자락이라 옷깃을 여며도 쌀쌀했던 계절이었어요. 저와 제 남편은 반 고흐의 작품이 전시된 2층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굽이치는 고흐의 하늘처럼 눈물을 글썽이던 남편의 옆모습을, 오래도록 반 고흐의 작품을 바라보던 그 굽은 등을 절대 잊지 못해요. 그가 <자화상>과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을 빤히 바라보는 동안 제 마음도 덩달아 굽이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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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친 마음은 그로부터 8년 후, 2016년의 뉴욕 MOMA에 닿았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을 바라보던 그의 뒷모습으로요. 남편은 아름답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그 그림에서 반 고흐의 정신세계와 가슴과 슬픔, 애잔한 눈빛이 고스란히 느껴진다고 말했어요. 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해해 주고 싶다고 했죠. 그 말을 듣자 돈 맥클린이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추모하며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 ‘Vincent(빈센트)'를 떠올렸습니다. 가사의 일부를 잠시 읊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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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 starry night
별이 빛나는 밤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ey
팔렛트를 푸른색과 회색으로 칠해요
Look out on a summer’s day
여름날 밖을 내다봐요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내 영혼의 어둠을 아는 그런 눈으로
<중략>
Starry, starry night
별이 빛나는 밤
Flaming flowers that brightly blaze
밝게 불타오르는 꽃들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보라빛으로 흐릿하게 소용돌이치는 구름
Reflecting vincent’s eyes of China blue.
빈센트의 푸른 눈이 비치네요.
아주 힘들 때는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나를 이해해주려 한다면 벅찬 기쁨을 느낍니다. 남편의 말과 동시에 이 노래를 떠올리니, 반 고흐는 적어도 제가 아는 두 사람에게 그 위로를 받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내 영혼의 어둠을 직시하는 눈. 어쩌면 고흐에게도 저에게도 그런 눈이 필요했던 시기였나 봅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말하지 않아도 나의 어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원할 거예요. 이해받고 이해해주는 그런 선순환이 예술의 순기능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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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장면: 잠시 휴식을 하며_ Sibylle Baier (Forget about)
큰 미술관을 3~4시간 거닐며 관람하다 야외 정원의 긴 벤치에 앉아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던 때처럼, 이번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베를린에 갔을 때 그런 휴식 같은 하루를 보낸 적이 있어요. 2021년 8월 22일, 6년의 복원 작업을 마친 베를린 신국립 미술관 안에는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1층 여기저기에 주저앉아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저도 그들처럼 기둥에 기대앉아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며칠에 걸친 촬영의 긴장으로 뱉지 못했던 큰 날숨을 몰아쉬며 작품이 아닌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보고 들었어요. 알아듣지 못하는 독일어를 들으니 무념무상의 시간이 잠시 찾아왔죠.
휴식은 단절의 순간을 만들어내요. 희망과 소망, 야망 혹은 간절함 등을 잠시 잊게 만들죠. 휴식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며 의미도 가치도 없는 행위를 해도 되는 시간이라고요. 그동안에는 무엇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요. 최근에 와서야 알려진 70년대 독일 포크 가수 Sibylle Baier의 ‘Foreget about’은 그런 목가적인 풍경을 그려내는 마법의 노래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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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Alte Pinakothek, 빛이 들어오는 휴식 공간© 전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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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made me forget about
넌 내가 가진 것, 갖고 싶은 것, 그리고 분투에 대해서
Have, want, exert
잊게 만들어
And all of a sudden, I feel proud
그리고 갑자기, 난 자랑스러워
Of being, without saying a word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You made me forget about
넌 내 과거와 고통에 대해서
Past and pain
잊게 만들어
Time, you washed out
지난 시간을 전부 씻어내
Like a soft, sudden, summer rain
갑작스런, 부드런 여름 비처럼
You do me good
넌 내게 선행을 베풀어
You do me
넌 내게
So good, you made me forget about
너무나 많은 선행을 베풀어, 잊게 만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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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룸바 뮤지엄 안, 휴식을 위한 의자와 여름의 빛이 들어오는 큰 창 © 전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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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만으로도 나의 과거와 고통을 잊게 만드는 부드러운 여름비 같은 존재, 그런 휴식의 순간은 미술관에서도 존재했어요. 때로는 무엇을 하지 않고도 충분할 때가 있어요. 누군가의 시간의 중첩을 바라보고 듣는 동안 그런 마법과도 같은 일이 일어날 때도 있고요. 그런 날에는 긴 글을 씁니다. 긴긴 대화를 하고 싶거든요. 잠자던 감각의 솜털이 깨어나는 순간, 그걸 잊지 않았으면 해요. 미술관에서 음악을 만난 것처럼요. 봐야 할 때 귀를 열고, 들어야 할 때 두 눈을 크게 뜨는 일. 진정 필요한 감각에는 휴식을 주고 다른 감각을 일깨우는 순간이 우리에겐 필요하니까요.
자, 이제 이 글을 마쳤어요. 글을 다 읽은 그대는 무엇을 감각하고 있나요? 끝이 난 순간, 무엇이 시작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질문의 답은 말하지 말고, 쓰지 말고, 머금길 바라요. 그저 떠오르는 음악을 하나 골라 들어보세요. 그 순간만큼 멀리 있는 당신과 저와 제 글은 좀 더 가까워질 거예요. 그렇게 서로의 감상을 감각해볼 수 있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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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전혜림 DESIGNER 제민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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