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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MAR. WINTER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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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아 Suna Park
세 권의 책 『20킬로그램의 삶』과 『어떤 이름에게』『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를 출간했다. 현재는 누데이크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명함에 적히는 직업이 바뀌고 다루는 매체와 소재가 달라져도 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고 여긴다. 언젠가는 작은 집에서, 넓은 사람과, 깊은 마음으로 살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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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는 어디서 구하나요?
열일곱의 12월,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자퇴서를 제출하던 날의 교무실 분위기는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습니다. 아빠가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교무실로 왔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아빠에게 제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 아이인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빠는 선생님 얘기를 귀담아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모든 얘기를 가만히 듣고 난 아빠가 입을 열었습니다. “선생님, 말씀 감사합니다. 물론 선아는 별난 아이지만 저는 선아가 어디서든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 힘 있는 아빠의 목소리가 한순간 교무실에 정적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아빠는 저라는 아이를 이해하고 믿음을 말했을까요? 아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저를 몰랐거든요. 제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 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믿음을 보내주었을 겁니다. 믿음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때는 그 믿음조차 무겁고 두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도, 가족도, 선생님도, 누구도 나를 이해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열여덟의 봄에는 담양에 있는 대안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유별난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에 유연했습니다. 제가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며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그게 왜 이상하냐고 되물으며 이런저런 질문을 건네주었습니다. 질문에 답을 다는 과정에서 저는 저란 사람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나와 비슷한 친구,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실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는 모두 이상하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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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선배에게 <10cm 예술>이라는 책을 선물받았습니다. 이 책에서 10센티미터라는 것은 태블릿의 크기를 의미합니다. 커다란 그림을 그려왔던 화가 김점선은 오십견을 겪게 되며 캔버스를 마주할 수 없었고, 아들이 사준 태블릿에 새로운 형태의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책에는 태블릿으로 그린 그림들과 에세이가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처음으로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하는구나!'를 느꼈습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을 알아봐 주는 이를 만났달까요. 내 마음을 꼭 닮은 이야기와 그림이 세상에 존재한다니, 놀라웠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요. 아빠의 믿음도, 친구들의 응원도, 좋은 질문을 던져주는 새로운 선생님들도, 모두 다 저를 사랑해 주었지만 그때까지 누구도 저를 이해한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화가는 제 존재를 모르고 목소리 한 번 들어본 적 없는데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져 그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책에 실린 그의 그림을 찢어 기숙사 방과 도서관 자리에 붙여 두고 매일 들여다보았습니다.
책의 뒤표지에는 ‘아무도 그 여자를 길들이지 못한다’는 문구가 크게 적혀 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그 문장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김점선은 요상한 인간입니다. 머리카락을 빗지 않고, 옷을 사 입는 일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늘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꼴로 가끔은 신발도 신지 않고 거리를 거닙니다. 인생의 중대사라는 결혼을 어느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 하룻밤 안에 해결해 버리더니 곧장 아이도 갖지요. 남편이 술에 취해 어느 술집에 있으면 그를 찾아 데려오고, 임신한 몸으로 창살이 난 담을 넘기도 합니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몸이 마를 때까지 알몸으로 집을 배회합니다. 그리곤 그림을 그립니다. 말과 오리, 새, 토끼를 그립니다.
그때까지 제가 살아온 세계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가 적어 놓은 것들은 가끔 해보던 생각이었지만 누군가에게 털어놓거나 행동으로 옮기면 이상한 아이로 취급받게 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에 안도가 되었습니다. 그가 그려 놓은 여러 그림을 보고 있으면, 누구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세상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이가 한 사람 있고, 그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일이 괜찮아졌습니다.
우리는 어떨 때 ‘이해’라는 단어를 쓰나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이가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요?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이해라는 단어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점점 더 이해는 불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해라는 단어는 그것이 존재하기에 만들어진 말이 아니라 그걸 시도하기 위해 생긴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세상에는 이해했다거나 받았다는 오해만이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요. 나와 타인 사이에 그런 시도가 있었다면 그저 그 과정에 커다란 의미가 있을 겁니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일이 정말로 가능한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예술 안에서는 그 오해가 자유롭기에 그 점이 저를 자꾸 예술 앞으로 끌어다 놓곤 합니다. 예술가들과 주고받기 가장 쉬운 일이고, 그 오해를 풀지 않고 영영 오해로 남아도 그 사이에 이해가 존재하게 되니, 세상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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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되면 꼭 김점선 화가를 만나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는 서울에 살았고 나는 그와 가까워져 기뻤습니다. 언젠가 그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인사동에서 열린 전시에 가서 그가 있나 없나를 두리번거리기도 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대학 도서관에서 컴퓨터를 하다가 뉴스를 보았습니다. ‘2009년 3월 22일, 김점선 화백 63세의 나이로 별세’ 슬픔을 나눌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가 나를 이해한 유일한 이라는 사실을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대학 도서관에 있는 김점선의 책을 모두 다 들고 도서관 의자에 앉아 그날은 종일 그의 그림을 보았습니다. 그가 홀로 나를 위로했던 것과 같이 그의 죽음을 혼자 슬퍼했습니다.
한동안은 더 부지런하지 못했던 자신을 탓했습니다. 그를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이 고마움을 한 번은 꼭 전했어야 했는데, 하면서요.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 생활을 하고 난 뒤에도 가끔 그를 생각하며 아쉬워했습니다. 지금이라면 분명 내가 그를 찾아갈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빨리 가셨나, 아쉬웠습니다.
그런 시간이 10년쯤 흐른 뒤, 제 이름으로 쓰인 책을 몇 권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은 이들은 가끔 적극적으로 저를 찾습니다. 북토크에 찾아와 질문을 던지거나 메일이나 메시지로 제게 받은 것에 관해 설명합니다. 거기에 드러나지 않은 저를 궁금해하기도 하지요. 만드는 이가 되어 보니 알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만나지 못해서 어쩌면 다행이란 사실을요. 그림은, 예술은, 사람과 사람 간의 이해와 다른 형태로 존재할 때, 더 멋진 오해로 남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2006년에 선물 받은 <10cm 예술>은 그간 수많은 형태로 제 삶이 변해오는 과정에서도 버려지지 않고 방 한구석에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그 책을 꺼내 읽었고, 작은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이제는 그에게 이해를 바랄 수 없습니다. 그의 자유로움과 반항심 같은 것이 지금 제 세계에 없음의 반증입니다. 그를 이해하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저 멀리에 있는 뜬구름처럼 느껴집니다. 아쉽고 서운합니다. 요즈음의 저를 이해해 줄 화가는 어디에 있을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또 우연히 마주치게 되겠지요? 어느 미술관의 한구석에 우두커니 서서 울게 되거나 어떤 화가의 생을 담아 놓은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마음이 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제게도 그 행운의 순간이 찾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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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your wonderful spring.
계절의 경계에서 당신께 편지를 띄웁니다. 봄의 이름을 담은 편지는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따스한 마음을 나누면 좋겠다는 소망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나눈 온기로 올 한 해를 안녕히 지내길 바라봅니다.
모든 예술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봅니다. 그림을 통해 사람과 삶, 나를 만난 9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2월부터 3월까지, 겨울과 봄 그 사이에, 매주 금요일마다 당신의 편지함으로 찾아갑니다. 답장을 써보내주셔도 좋아요. 우리 함께 예술의 찬란함을 느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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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우리의 시작을 만나기를, 김제언·모모킴·박소라 인터뷰
박소라, 모모킴, 김제언 작가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어떤 역사를 거쳐 지금의 우리가 되었는지,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때의 마음은 어땠는지, 출발선에 선 지금 달려나가고 싶은 목적지는 어디에 있는지, 그런 지점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방의 여행은 ‘이색적인 장소에서의 생활’입니다. 별다른 특별함이 없지만 아방은 여행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런던에서의 유학, 베를린에서의 카우치 서핑, 뉴질랜드 여행 등.. 여러 다른 도시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아방에게 여행은 무엇일까요. 솔직하고 자유로운 아방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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