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언젠가, 저런 장난을 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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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솔 Dasol Yang
글쓰기 소상공인. 10년간 쓴 수필을 모은 독립출판물 <간지럼 태우기>를 발행하며 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유료 뉴스레터 ‘격일간 다솔’을 발행하고 ‘까불이 글방’지기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에세이 <간지럼 태우기>,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과 교양 인문서 <절멸>(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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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은 언제 장난을 치나요? 저는 가장 순수한 마음의 상태에 장난을 칩니다. 저는 글 쓰고 말하는 일을 합니다. 그것은 때때로 부담스럽고 긴장되는 일이에요. 하얗게 질려버린 빈 문서를 마주 보고, 청중들의 투명하고 가득 찬 시선 앞에 서게 되지요. 호흡은 짧아지고, 목이 빳빳하게 굳어갑니다. 이런 글을 써도 될까, 저런 말을 해도 될까.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나도 모르는 사이 조여드는 계산과 검열 끝에 한 문장 한 마디도 꺼내기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 순간 가장 많이 되뇌는 것은 '장난을 치자.'였어요. 장난을 치는 순간만큼은 그 모든 것을 하얗게 잊어버리게 된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어깨를 돌리고 기지개를 켜고 힘을 쭉 뺀 뒤에 한바탕 장난을 칩니다. 거기가 어디든, 누가 있든지요. 그것은 눈을 질끈 감고 추는 즉흥 댄스와 비슷합니다. 의도나 허세를 가지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지요. 그러면 놀이터에서 온종일 공들여 쌓은 모래성이 툭 쓰러져도 와하하 웃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처럼, 순간이 즐거워졌어요. 어른이 되니 장난을 칠래도 참 노력이 필요하더라고요. 어릴 적에는 세상 모든 것이 장난 거리였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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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는 미술관이 가장 경직된 공간이라 말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미술관에 전시 작가로 참여한 적이 있던 친구였기에 그 말은 솔깃했어요. 순수하면 미술을 빼놓을 수 없고, 그렇다면 미술관은 순수한 공간이어야 하니까요. 그는 이미 완성된 캔버스를 전시장에 거는 것이 아닌, 벽에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형태를 시도했습니다. 몇 날 며칠 그린 그림을 다 완성한 후에는 작품 앞에 자신이 가장 아끼는 색연필을 두었어요. 오가는 관객이 직접 그 그림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거든요. 가장 먼저 그것을 집어 든 것은 당연히 아이들이었습니다. 장난은 순수하고, 그렇기에 아이들의 특기이지요. 아이에게는 검열도 경계도 없으니까요. 친구의 작품 위로 색색깔의 낙서와 그림이 덧그려졌습니다.
친구는 곧 미술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작품을 훼손한 아이들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겠냐는 내용이었어요. 문제 아이들의 학부모 연락처까지 다 받아둔 상태라고 말이죠 . 친구는 말했습니다. "그러라고 둔 것인데요." 작가 본인이 그렇게 말하니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어요. 그럼에도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날로 늘어났습니다. 미술관, 작가, 관객 할 것 없이 작가가 아닌 사람이 작품에 손을 데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워했습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색연필은 치워졌어요. 친구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거 내 건데. 내가 아끼던 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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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라우흐, 로사 루이 <경계에 핀 꽃>전시 전경 ©양다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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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미술관에 전시된 안경이 사실은 17살 관람객이 놓아둔 장난이었다는 해프닝은 유명합니다. 저는 그 사건을 외신 뉴스란에서 접하며, 예술이란 시각의 환기라는 점을 다시금 생각했어요. 작품과 작품 아님, 작가와 작가 아님의 경계를 높이 드리운 이상 장난을 치기 어려운 공간이 되고 말겠다고요.
그런 저를 홀린 듯이 이끌었던 전시는 네오 라우흐와 로사 루이의 <경계에 핀 꽃>이었습니다. 스치듯 본 그들의 그림은 꼭 제가 어젯밤 꾼 꿈 같았어요. 대체 누가 그런 정신 나간 그림을 그리나 생각하며 정신 차리고 보니 미술관 앞에 있었어요. 예상했던 대로 그 전시는 참말로 이상했습니다. 우선 거대하고, 하여튼간에 열심히 그린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어요. 너무 거대하고 세심해서, 인간이 손으로 만든 것 중에 가장 세공품을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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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라우흐, 로사 루이 <경계에 핀 꽃>전시 전경 ©양다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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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는 그림이 없었습니다. 툭 하면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이 반복되어 나왔고, 상반신은 사람인데 하반신은 공룡이고, 화분에서 남자들의 얼굴이 열매처럼 열리고, 하늘에 갑자기 글자들이 떠다니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사람들이 서 있고, 누구 하나 정상적으로 웃고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쓰인 색들도 괴이했어요. 정확히 말하면 현실적인 색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 물건의 그 색이 작품에 그대로 쓰인 일은 없었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푸른색인 사람 옆에는 돌연 온통 갈색으로 칠해진 사람이 있고는 했지요. "이래도 되는 거였어?" 저는 묻고 싶어질 지경이었어요. 누가 이 작가들한테 이러면 안 된다고 말 안 해줬나? 싶었습니다. 그들의 작품은 꼭 아이가 본 것을 어른의 손으로 그린 그림 같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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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라우흐, 로사 루이 <경계에 핀 꽃>전시 작품 중, 양다솔의 시선 ©양다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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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내가 언젠가 꾸었던 꿈, 빠져있던 망상, 꿈꾸었던 환영을 현실의 조각으로 가져오는 데 성공한 것 같았습니다. 그 커다란 캔버스를 상상하고, 그리고, 색을 채우는 그 오랜 시간을 생각하면 그저 경이로웠습니다. 한참 동안 서서 구석구석을 살피게 했어요. 도대체 어떤 환영이기에 그것을 이토록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화폭에 옮기게 했을까, 저도 궁금해졌거든요. 누군가 이토록 진심으로 장난을 친다면 이렇게 매혹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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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라우흐, 로사 루이 <경계에 핀 꽃>전시를 관람하는 양다솔 ©양다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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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라우흐와 로사 로이는 35년 동안 부부 생활을 하고, 25년 동안 같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 동료이자 부부입니다. 그들은 신화와 꿈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이 그린 존재들은 여자 같기도 하고 동물 같기도 하고 요정 같기도 했으며, 그저 남자 같기도 했습니다. 살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죽은 것 같기도 했어요. 그들은 독일의 작센주에서 나고 자랐으며 여전히 그곳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고 자란 곳이 다름 아닌 독일의 동독이라는 점은 그들의 작품을 또 한 번 다시 보게 만들었어요. 여전히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 독일의 일례는 한 줄기 희망과도 같은 것이지요. 그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의 동독은 억압되고 보수적인 이념의 온상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시작된 두 작가의 예술은 짐짓 말도 안 되어 보입니다. 차라리 서독이라고 했다면 고개를 끄덕였을 거예요. 그러니까 마치, 음악 따위는 없는 곳에서 최고의 댄서가 나온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들의 작품들은 마치 그들만의 독립적인 세계 속에서 움트고 영글고 무르익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을 둘러싼 역사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성공한 예술가로서 세상 어디로든 둥지를 옮길 수 있는 둘은, 여전히 그곳에 머무르기를 택했어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그 순간에도 묵묵히 그림을 그렸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를, 그들이 있는 곳이 'no where'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라고 상상해봅니다. 그들은 작센주에 존재하지만, 또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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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라우흐, 로사 루이 <경계에 핀 꽃>전시 전경 ©양다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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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저는 그들의 눈에서 장난기를 발견했거든요. 그들은 언제나 순수에게 가장 큰 자리를 내어주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들의 작품에는 신화와 꿈이, 남성과 여성이, 실재와 환영이, 이성과 비이성이, 삶과 죽음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국경쯤이야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죠. 그들은 그 경계 사이에서 고무줄놀이하는 데에는 굉장한 베테랑으로 보였습니다. 저 자신에게 묻게 됐어요.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던, 나의 작고 순수한 망상에게 저렇게 큰 관심과 자리를 주어본 적이 있나 하고요. 저는 그들의 미술관에서 잠시간 넋을 잃다가, 어금니를 꽉 깨물게 되었습니다. 나도 언젠가, 저런 장난을 치겠어. 그러고 나니, 벌써부터 몸이 근질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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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미술관에서 만난 ( )
오늘 보내드린 이야기는 ‘미술관에서 만난 ( )’ 시리즈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총 9편의 편지에는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시리즈를 진행하며, 어쩌면 지루할 수 있는 그 공간이 수많은 재미난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 ) 이 안에 들어간 단어만 모아 봤을 때 공통점이 '미술관'이라니. 너무 귀엽고 즐거운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공유받은 시선을 발판 삼아 그곳에서 더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편지를 다 쓰고도 아쉬운 마음에 추신(P.S)을 붙이게 되지요. 매월 첫 주 보내는 프린트베이커리의 뉴스레터 P.S 또한 온라인 스토어 We Bake에 담지 못해 흘러넘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만난 ( )'시리즈는 끝이 났지만, 계속해서 에디터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발견한 미술 이야기를 추신에 속삭이듯 보내드릴게요.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해당 프로젝트에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전해준 모든 기고자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 또 만나요. 감사합니다!
#01 P.S 미술관에서 만난 (사람들), 전혜림 에디터
#02 P.S 미술관에서 만난 (바다), 오은재 에디터
#03 P.S 미술관에서 만난 (자연), 박선영
#04 P.S 미술관에서 만난 (표정), 오은
#05 P.S 미술관에서 만난 (음악), 김모아
#06 P.S 미술관에서 만난 (양눈잡이*), 박참새
#07 P.S 미술관에서 만난 (시선), 오은재, 전혜림 에디터
#08 P.S 미술관에서 만난 (시간), 유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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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예술, 김오안의 시선
최근 개봉한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영화 보셨나요? 故김창열 화백의 둘째 아들 김오안은 브리짓 부이오와 함께 그의 아버지의 삶을 영화로 담아냈습니다. 김오안은 영화 감독뿐만 아니라 음악가, 사진가이기도 합니다. 여러 예술 매체를 오가는 그는 일상에서 예술과 어떤 방식으로 마주하고 있을까요? 그의 일상예술 이야기를 프린트베이커리에서 만나 보세요.
고요히 이어지는 차이의 반복, 배세진 전시 비평
김태휘의 비평은 배세진 작가의 작업 전반을 톺아 보면서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권유합니다. 조각과 숫자는 배세진에게 무엇인지, 그의 전시명은 왜 '지속, 반복, 변화, 순환'인지, 작가가 '수행'이라는 말 앞에서 고개를 젓는 이유는 무엇인지. 작품의 고요함 안에 숨겨진 가치를 김태휘의 비평을 통해 다시 발견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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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전혜림 DESIGNER 이혜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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