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구운 예술 소식을 받아보세요.
PRINT BAKERY l NEWS LETTER
2022. MAR. WINTER LETTER
|
|
|
|
1985년 한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2010년부터 공식적으로 ‘에디터’ 직함을 달고, 이리저리 누비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듣는 일을 해왔다. 사람을 두려워하면서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자양분 삼아 꾸준히 용기와 사랑을 얻어왔다. 현재는 질문하는 매체 매거진 <B>의 에디터로 몸담고 있다.
|
|
|
다정하게, 안녕히
안녕하세요? 봄의 계절에 부끄러운 고백이 담긴 편지를 띄웁니다. 저는 긴 기간 타인의 목소리를 전하는 인터뷰이이자 에디터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 이야기를 꺼내는 일에 한없이 서투른 사람입니다. 누군가 저란 사람이 성장해온 시간에 대해 궁금해한다면,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발끝만 보면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할 거예요(언젠가 이 레터를 읽고 저와 마주친 당신이라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사실을 확인해 봐도 좋습니다). 다시, 용기를 내 이 자리에서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더 꺼내봅니다. 저는 여전히 저 자신이 낯선 타인처럼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정직한 관찰자로서 인생을 살기로 결정한 일 또한 저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헷갈리는 상태로 살아왔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기억’을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타인의 비언어적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제일 잘하는 일은 부모님과 친구가 말해주지 않은 비밀을 맞추는 일이었어요.
제 머릿속은 온통 수수께끼로 가득했고, 저는 늘 외로웠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방과 후에 과연 몇 명이나 운동장에 남아 고무줄놀이를 하고 갈 것인지 염려했다면, 저는 왜 엄마가 자동차 뒷좌석에 저를 태운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을까, 궁금하게 여겼지요. 이러한 제가 이유 없이, 그리고 의심 없이 몰두한 것이 있다면 그림 그리기였습니다. 1990년대는 유행처럼 여자아이에게 피아노 학원이나 미술 학원을 보내곤 했었는데, 저는 정해진 소리를 내지 못하면 자로 손등을 날카롭게 내리치는 피아노 학원에 가는 일이 두려웠어요. 대신 힘차게 문을 밀고 들어선 만큼 종소리가 크게 울리는 미술 학원을 사랑했습니다. 미술 학원 공기에 짙게 밴 물감 냄새를 큰 숨으로 들이키고 나면 깊은 안도감이 들었어요. 사각사각, 종이 위를 나풀거리면서 춤추는 연필 소리와 같은 이름을 가진 그곳에서 저는 ‘인생 1호 친구’를 만났습니다. 하세나(가명을 쓰겠습니다). 그 친구의 이름이에요. 저는 내내 잊지 않았어요.
|
|
|
성인이 되어 미술 학원처럼 안식의 공간이 되어준 작가 손정민의 작업실 ⓒ김나래
|
|
|
제가 고심하면서 선 하나를 그릴 때 친구는 벌써 몇 번씩 연필로 스케치북 위아래를 거침없이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유로워 보이는 친구를 곁눈질로 살펴보면서 제 손은 차츰 빨라졌답니다. 저는 이제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어요. 미술 학원에 가기 위해 학교가 끝나기를 기다렸고, 저와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친구와 이젤 앞에 앉아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다렸습니다. H.O.T와 젝스키스의 패션 중 월등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왜 유독 ‘광명 슈퍼 표’ 얼린 쥬시쿨이 맛이 있는가에 대해, 또 언젠가 함께 예술 학교에 진학해 교복을 입는 일에 대해…슬며시 기댄 마음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은 언제나 왜 예측하지 못한 때에 찾아오는 걸까요. 어느 날인가, 한참을 기다리는데 친구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굣길에 심장 마비로 쓰러졌다고 했습니다. 조심스레 연 문이 기약 없이 닫힌 듯 황망한 기분이 들었지요. 우리의 미래를 기다리지 않고, 성큼 떠나버린 친구가 원망스럽고, 미안했고, 부끄러웠습니다. 살면서 정말 많은 일을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마음이 들 때마다 친구의 얼굴이 떠올라요. 과거에 멈춰 있는 친구의 얼굴은 언제나 웃고 있어요.
미래의 장소에 ‘우리’가 사라지자 그림 그리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저는 듣는 일을 시작했어요. 제 곁에 이야기를 ‘토템’처럼 붙잡아 둔 채 보존하고 싶었을까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 것이 될 것만 같았거든요. 하지만 저는 제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어 마음이 슬펐습니다. 또다시 마음이 슬픈 어느 날, 우연히 서도호 작가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살던 공간을 반투명한 섬유 소재로 재현하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서도호 작가가 18년간 살았던 뉴욕의 주거지이자 스튜디오를 떠나면서 그를 기념한 전시 <Rubbing / Loving>을 준비하면서 촬영한 영상이었어요. 삶의 흔적이 담긴 집 전체를 종이로 감싼 뒤 색연필로 계속 문지르면서 그곳에서의 기억과 시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문고리와 스위치 등 그가 문지르는 것들에는 깊은 애정이 스며 있어요. 삶의 순간순간을 재측정하는 일이기도 했고요. 켜켜이 쌓인 기억을 담고 있는 집에 새로운 기억을 부여하면서 과거의 기록이 새로운 미래가 될 수 있게 하는, 작가만의 건강한 작별 인사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
|
|
뭉클한 감동을 주는 것은 서도호 작가와 집주인 ‘아서’와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18년 전 보잘것없는 예술가인 그를 세입자로 들이면서 그에게 집주인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이 집에 뭐든지 해도 좋다”라고 했답니다. 18년 뒤, <Rubbing/ Loving> 전시를 위해 작가가 만난 아서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고,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서도호 작가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해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이 집에 뭐든지 해도 좋다.”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예술이란 무엇이어야 할까요? 제게는 용기 같고, 사랑 같고, 위로 같습니다. 서도호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저는 친구의 죽음에 슬픔보다 원망의 감정이 먼저 따라왔다는 미안함을 조금은 내려놓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만큼 스스로 마음이 건네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해요.
슬픔과 가까운 기억도 모른 척하지 않을게요. 이제 괜찮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조금 생긴 것 같아요. 그러니 여러분도 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날카로웠던 기억을 천천히 놓아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계절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도록 말이죠.
|
|
|
아주 가끔 손정민 작가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김나래
|
|
|
For your wonderful spring.
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시나요? 겨울에서 출발해 봄으로 되돌아오는 도돌이표 속에서 계절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네요. 이번 봄편지 Editor's Letter에서는 김애란 소설가의 『잊기 좋은 이름』이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어요. 저는 소설가가 쓴 산문집을 참 좋아합니다. 소설 속 인물을 빌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서요. 『잊기 좋은 이름』에서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언젠가 두보가 쓴 「곡강」을 두고 학생들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단순히 '꽃잎이 떨어진다'라고 생각하는 삶과 그렇게 떨어지는 꽃잎 때문에 '봄이 깎인다'라고 이해하는 삶은 다르다고. 문학은 우리에게 하나의 봄이 아닌 여러 개의 봄을 만들어주며 이 세계를 더 풍요롭게 감각할 수 있게 해준다."
김애란 소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줬을 이 이야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배웠습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보는 사람들, 저는 예술가들에게서도 같은 것을 배웁니다. 이 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느낄 수 있는 시선을요. 단 한 번뿐인 올해의 봄에도 예술가들의 시선을 부지런히 쫓아가보려고 합니다. 스쳐 지나가기 쉬운 봄의 작은 기쁨들을 놓치지 않고 누리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봄편지를 읽고 계신 여러분에게도 예술가의 시선이 닿아 기쁨 가득한 삶이 당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꽃잎이 떨어진다'라는 삶에서 떨어지는 꽃잎 때문에 '봄이 깎인다'라는 삶으로요.
|
|
|
아방의 여행은 ‘이색적인 장소에서의 생활’입니다. 별다른 특별함이 없지만 아방은 여행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런던에서의 유학, 베를린에서의 카우치 서핑, 뉴질랜드 여행 등.. 여러 다른 도시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아방에게 여행은 무엇일까요. 솔직하고 자유로운 아방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아톰 시리즈에 대해 묻자 작가는 본인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합니다. 유년 시절 작가의 방은 좋아하는 것들을 한가득 모아 놓은 위안의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많은 좋아하는 것들 사이에는 항상 아톰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We Bake Editorial 읽으러 가기 >> |
|
|
맛있는 예술과 프로모션 소식을 배달하는
프린트베이커리 뉴스레터입니다.
구독자에게는 무료 포스터 증정 및
이벤트 초대, 선물, 할인 등의 혜택을 드립니다.
EDITOR 박세연 DESIGNER 제민주 |
|
|
ⓒ 2022 printbakery. All rights reserved.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