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구운 예술 소식을 받아보세요.
PRINT BAKERY l NEWS LETTER
2022. MAR. SPRING LETTER
|
|
|
|
서울에 산다. 다섯평 방 월세 45만원을 내기 위해 6년간 디자이너로 일했다. 2018년 그림 유튜브 채널을 시작해 현재는 67만 유튜버, 강연자, 작가로 활동 중이다. 2021년 봄에책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을 출간했고, 그해 가을 개인전 『아워 실루엣』을 열었다.
|
|
|
그림을 그려도 될까요?
잘 지내고 계시나요? 일본 영화 러브레터 보셨는지. 저는 그 영화를 퍽 좋아한답니다. 주인공이 설원에 홀로 서서 산에 있는 그리운 연인에게 안부를 물어요. 저도 그런 소원을 빌고 있답니다. 당신이 어디서든 잘 지내기를 바라며, 이 편지를 적는 거예요.
이곳은 인터넷이 안 되는 산속이에요. 단절된 세계에서 새벽 5시에 일어나 편지를 적고 있어요. 너무 조용해서 누군가가 산을 향해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어도 저는 못 들을 것 같아요. 결국 주인공의 목소리가 닿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약간 울적해지네요. 그래도 저는 이런 상상을 해요. 산 아래에서 누군가 나의 안부를 묻고 있다. 나는 거기에 끊임없이 잘 지낸다는 대답을 한다. 그리고 이런 상상도 합니다. 이연의 편지가 당신의 머리맡에 닿는다. 그 편지는 그림과 재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재능이 없는데도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나요?’ 제가 항상 받는 질문이에요. 대체로 저는 ‘그럼요,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답니다.’라고 대답하지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재능이 없는데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거의 못 봤어요. 저조차도 일찍이 재능이 있었답니다. 그림뿐만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재능이 참 중요하죠. 슬프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근데 세상이 원래 불공평하더군요. 저는 그걸 제 재능 때문에 깨달았어요. 나는 노력도 안 했는데 왜 이런 능력을 갖고 있지? 어릴 때부터 그런 생각을 자주 했거든요. 아, 이런 이야기는 너무 재수 없나요? 앞으로도 한참 더 해야 할 텐데요.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체력장을 했을 때 유난히 멀리 뛰는 애들이 있잖아요. 평범한 학생이라면 평소에 멀리뛰기 연습을 할 리가 없는데 그럼에도 누군가는 무척 멀리 뛴단 말이죠.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도 그런 느낌에 가까워요. 연습하지 않았는데 선이 쉽게 그어지는 느낌. 나이 들어도 여전히 잘 돼요. 여러분은 제가 얼마가 그림을 안 그리는지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거예요. 저는 유튜브 영상 촬영용 외에는 그림을 거의 안 그린답니다. 제가 그림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얘기 중 이게 제일 솔직한 이야기라 생각해요. 사실은 상상 이상으로 많이 안 그린다, 그리고 본인의 재능에 의지하고 있다. 사실 의지보다는 믿음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저는 제 선을 믿고 있어요. 그림을 평생 그린 이유도 그것 때문이에요. 믿음을 가장 덜 저버리는 게 제게는 그림이었어요. 많은 일들에 상처를 받아도 그림만큼은 제 노력보다 멋지게 나왔어요. 이런 삶을 상상해 본 적 있나요? 선이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 항상 더 잘 그려지는 삶, 그래서 그 선을 보고 안도하는 삶, 그 선 하나 믿고 다른 일들을 실컷 하고 다니는 삶, 그러다가 상처받으면 다시 그림으로 도피하는 비겁한 삶 말이에요. 그러니 제가 어찌 그림을 버리고 살 수 있겠어요. 재능이라는 게 이토록 말이 안 되는 축복이에요. 재능이 흔치 않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죠.
|
|
|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 VS 내가 사랑하는 사람’
둘 중에서 어떤 사람이랑 사귈래? 우리는 이런 질문도 자주 하죠. 저의 경우 그림이 저를 훨씬 많이, 오래 사랑해 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림을 그렸죠. 하지만 반대로 내가 그림을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하더라도 저는 여전히 그림을 그렸을 것 같아요. 당신이 그림을 사랑하고 있다면, 재능 여부랑 상관없이 그림도 성의를 보여줄 거예요. 재능이 없으면 그림을 포기하겠다는 고민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질문을 바꿔보도록 하죠. ‘재능이 없는데도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나요?’대신, ‘그림을 사랑하는데 계속 그려도 될까요?’로 말이에요. 대답은 각자의 마음속에 이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기 싫으면 다른 거 하면 돼요. 재미있는 일이 어찌나 많은지. 어떤 질문에든 ‘괜찮다’라는 대답이 필요하다면 밖에서 찾지 마세요. 가장 다정한 문장,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늘 우리의 안에 이미 있답니다.
주로 받기만 한 제 입장에서 좋은 사랑에 대해서 감히 말해보자면, 좋은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거예요. 그림을 잘 그리게 해달라는 것도 어쩌면 그림에게 바라는 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마찬가지로 저도 항상 그림에게 뭔가를 바랐던 것 같아요. 나를 유명하게 해줘, 성공하게 해줘, 돈을 많이 벌게 해줘. 돌이켜보니 그건 사랑이 아니었어요. 그림은 그런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죠. 애초에 내가 큰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성공하라고 제게 온 존재가 아니거든요. 그냥 삶을 살면서 원하는 선 하나를 그을 수 있는 일이 큰 위로가 될 테니까. 다른 많은 일들로 좌절해도 내 손은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손이라는 사실 하나로 다시 시작하라고, 정말 뒤에서 무한히 응원해 주는 사랑을 준 건데. 그 사랑을 스무 일 곱쯤 되어서야 깨달았어요. |
|
|
스스로에게 되물었죠. 나는 사랑을 받기만 하고 준 적은 없구나. 그렇다면 그림에게 어떤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곁에 머물러주는 것.’ 제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란 그런 모습이었어요. 저는 연필을 다시 쥐었습니다. 종이를 펼치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림을 잔뜩 그렸어요. 내가 화가라는 것을 세상이 잊어버리지 않게 계속 문을 두드리고, 종이를 낭비하고, 그러다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림이 얼마나 멋지고 삶에 큰 위로가 되는지 세상에 알리고 싶었거든요. 사실 사람들이 안 봐도 상관없었어요. 이건 너무 중요한 얘기라서 적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신기하게도 채널을 시작한 지 여섯 달 만에 저는 10만 유튜버가 되었고, 3년이 지난 지금은 70만 유튜버가 되었네요.
솔직히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게 자주 귀찮습니다. 근데 또 이렇게 미루다가 그림 그리면 얼마나 재밌는지 말이에요. 그림 재미없다고 잔뜩 툴툴대다가 간신히 그렸을 때, 아직도 나를 배신하지 않은 멋진 선이 나올 때, 참 세상이 불공평하구나 싶어요. 이런 게 재능인 거지! 잠시 우쭐대다가 동시에 이 불공평한 세상을 더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이만큼 안 그리는 제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부터가 불공평하니까요. 그러니까 다른 일들도 그저 온전히 받아들이고, 못하는 부분들은 더 노력하면서 살고 있어요. 당신도 하나쯤 있을 거예요. 이것 참 세상 불공평하네?라는 생각이 드는 당신만의 작은 재능. 살면 살수록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나를 사랑해 주는 것들이 곁에 아주 많이 있었어요.
그러니 우리 흠뻑 살도록 해요. 내게 주어진 사랑을 발견하고, 때로는 대가 없이 사랑을 주는 삶을 말이에요. 저는 이만 아침 목욕을 하려고 합니다. 근처에 산이 보이면 저의 안부 인사를 생각해 주세요. 지금 막 여러분께 마음을 보내고 있거든요. 잘 지내라고. 따뜻한 곳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으라고. 이 편지는 깨어난 후 아침에 읽어달라고 말이에요.
2022년, 산속에서, 이연
|
|
|
For your wonderful spring.
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시나요? 겨울에서 출발해 봄으로 되돌아오는 도돌이표 속에서 계절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네요. 이번 봄편지 Editor's Letter에서는 김애란 소설가의 『잊기 좋은 이름』이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어요. 저는 소설가가 쓴 산문집을 참 좋아합니다. 소설 속 인물을 빌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서요. 『잊기 좋은 이름』에서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언젠가 두보가 쓴 「곡강」을 두고 학생들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단순히 '꽃잎이 떨어진다'라고 생각하는 삶과 그렇게 떨어지는 꽃잎 때문에 '봄이 깎인다'라고 이해하는 삶은 다르다고. 문학은 우리에게 하나의 봄이 아닌 여러 개의 봄을 만들어주며 이 세계를 더 풍요롭게 감각할 수 있게 해준다."
김애란 소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줬을 이 이야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배웠습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보는 사람들, 저는 예술가들에게서도 같은 것을 배웁니다. 이 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느낄 수 있는 시선을요. 단 한 번뿐인 올해의 봄에도 예술가들의 시선을 부지런히 쫓아가보려고 합니다. 스쳐 지나가기 쉬운 봄의 작은 기쁨들을 놓치지 않고 누리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봄편지를 읽고 계신 여러분에게도 예술가의 시선이 닿아 기쁨 가득한 삶이 당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꽃잎이 떨어진다'라는 삶에서 떨어지는 꽃잎 때문에 '봄이 깎인다'라는 삶으로요.
|
|
|
프린트베이커리가 소개하는 미술 취향, 아티스트 유나얼의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유나얼은 음악과 미술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노래로, 때로는 그림으로 묵묵히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갔습니다. 온전한 마음을 담아 예술의 곁에 머무는 아티스트 유나얼, 그와 나누었던 내밀한 미술 취향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세요.
칼더의 모빌은 공기의 흐름과 진동으로 섬세하게 움직입니다. 모빌의 선은 움직이며 면을 만들고 면은 움직이면서 공간을 창조합니다. 아름다운 선과 면을 그리며 공간을 유영하는 모빌은 춤추는 것 같기도 합니다.
We Bake Editorial 읽으러 가기 >> |
|
|
맛있는 예술과 프로모션 소식을 배달하는
프린트베이커리 뉴스레터입니다.
구독자에게는 무료 포스터 증정 및
이벤트 초대, 선물, 할인 등의 혜택을 드립니다.
EDITOR 박세연 DESIGNER 제민주 |
|
|
ⓒ 2022 printbakery. All rights reserved.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