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cent van Gogh, letter to Theo van Gogh, April 1885
얼마 전, 낯선 주소로부터 편지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현관 앞 택배 상자나 집배원이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 익숙한 요즘. 녹슨 철제 우편함의 편지 한 통은 새로운 설렘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발신자는 적혀있지 않았으나 편지에 담긴 필체와 그림으로 옛 친구를 알아볼 수 있었어요. 간결한 내용의 소식임에도 특별한 감동을 느낀 것은 손으로 쓴 서신의 진심과 낭만을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낯선 향의 종이와 잉크 자국, 시대를 담은 우표로 완성되는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한 시공간. 때로는 가장 은밀하고 정교하게 기록된 사료로서 발굴되는 종이뭉치들. 그렇다면 화가들의 편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빈센트 반 고흐는 아마도 '편지'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작가일 것입니다. 그가 남긴 방대한 양의 편지들에는 사적인 삶 뿐만 아니라 작품의 스케치와 구상배경 등 작업에 얽힌 세세한 스토리들이 온전히 녹아있습니다. 그가 18년 동안 작성한 800여통의 편지들은 치열했던 삶의 기록과 함께 작품을 더욱 입체적으로 독해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중 650개 이상은 그가 동생인 테오에게 보낸 것으로 테오가 편지를 무사히 보존한 덕분에 대부분의 편지들이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고흐에 대해 알려진 많은 사실은 형제가 주고받은 서신으로부터 발췌된 정보가 대부분이며, 고흐와 테오가 함께 파리에 살아 서신을 주고 받지 않았던 때는 비교적 덜 알려진 시기로 남아있습니다. 테오가 보관한 고흐의 편지들은 1914년, 처음 서신집으로 출판된 이래로 그의 그림만큼이나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도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 절망에 빠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거야.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빈센트 반 고흐가 테오 반 고흐에게
(좌) Frida Kahlo’s Declarations Of Love
(우) Frida Kahlo sent to Emmy Lou Packard ⓒCourtesy of Doyle New York
편지로 유명한 또 다른 아티스트는 프리다 칼로입니다. 특히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에게 보낸 원색적이고 강렬한 애증의 편지들은 그녀의 뮤즈인 '고통'만큼이나 들끓는 창조의 원천으로서 넘치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칼로의 연인이자 스승, 사고이자 사랑, 영감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동반자였던 리베라를 향한 그녀의 기록들은 한 사람과의 질긴 인연을 넘어 평생을 투쟁가로 살아온 화가로서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편지의 말미마다 레드립의 키스마크를 남긴 서명에서 사랑이 곧 생존이었던한 화가의 위대한 마음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피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사원이나 마법의 힘 없이
나는 당신의 두려움과 커다란 불안 속에,
그리고 심장 소리 안에 갇히고 싶습니다.
....
당신의 빛 그리고 온기. 당신을 그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적합한 색깔은 없어요. 색깔이 너무 많거든요. 혼란스럽게도, 내 커다란 사랑의 구체적인 형태로서."
프리다 칼로가 디에고 리베라에게
Lucian Freud Letter to Stephen Spender (1940) ⓒ Courtesy Sotheby’s London
2015년, 영국 사실주의의 대가 루시안프로이트의 러브레터가소더비경매에서 6,4000달러에낙찰되었습니다. 1939년에서 1942년 사이에 주고받은 이 서신들은 루시안 프로이트가 시인이자 비평가인 스티븐 스펜더에게 보낸 10통의 편지 모음으로 화제가 되었죠.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이기도한 루시안 프로이트는 특유의 강렬한 작풍 뿐만 아니라 복잡한 사생활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경매로 공개된 편지들은 루시안 프로이트가 본격적으로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기 전, 청소년기에 작성한 것들로 그의 미술적 재능과 관계에 대한 애정, 때론 불경한 언어들로 가득찬 수채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루시안 프로이트의 편지들은 우스꽝스러운 별명으로 가득한 서명란과 수많은 낙서들을 통해 그의 복잡한 정신세계와 삶을 해석할 수 있는 또 다른 작업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받았던 편지들을 모두 보관하고 계신가요? 깊숙한 옷장 구석, 혹은 캄캄한 침대 밑 어딘가 잊혀진 이야기들이 봉인되어 있지는 않나요. 때론 먼지쌓인 상자를 여는 것 만으로 충분한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시절의 영혼이 담긴 화가들의 편지. 그림보다 내밀한 서신의 이야기가 즐거움이 되었길 바라며, 8월의 P.S를 이만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