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언제 미술관으로 향하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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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AUG.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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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은 언제 미술관으로 향하게 되나요? 나를 둘러싼 일상의 풍경들이 단조롭다고 느낄 때마다 이를 환기하고자 미술관에 찾아가곤 합니다. 창을 열어두듯 복잡한 머릿속에 틈을 조금 만들어두고선 작품 앞을 거닐다 보면 산뜻한 감각들이 밀려 들어와 저를 채우곤 하지요. 그때의 기분은 마치, 수평선 너머에서 불어온 선선한 바닷바람을 마주친 것만 같달까요.
하필 바닷바람을 언급한 이유를 물으신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여름의 정점을 지나가는 시점이라서가 아닙니다. 제겐 바다와 미술관이 비슷한 속성을 지닌 공간처럼 여겨집니다. 광활한 여백과 그에 버금갈 정도로 끝도 없는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의 황홀한 감동과 수평선을 마주할 때의 아득한 감정은 파동처럼 밀려와 비슷한 무늬를 남기고 갑니다. 그래서일까요,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는 사람과 바다를 보는 사람의 뒷모습은 꽤 닮았습니다.
이러한 비유가 성립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두 가지 장면이 있습니다. 각각 다른 계절을 건너오던 중, 미술관에서 우연히 만난 바다 때문이지요. 넘실거리는 물결을 자주 상상하게 되는 이 계절에 기억 속 이야기를 꺼내어 들려드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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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가장 뜨거웠던 바다
핀란드 여행 도중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 미술관에 들렀던 적이 있습니다. 사실 미술관은 여행 중 쉬어가기에 적당한 공간은 아닙니다. 수많은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선 끝도 없는 산책을 해야 하니까요. 당시, 동행했던 친구와 저는 작품 하나하나를 전부 집중해서 들여다볼 여력 따윈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진이 빠진 채로 미술관을 둘러보는데, 꼭 어둠이 내려앉은 겨울밤을 정처 없이 떠도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테네움 미술관은 한국에 가보았던 미술관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거든요. 발자국 하나 남기면 안 될 것만 같은 새하얀 전시장들과 달리, 명도와 채도가 낮아 어둑어둑한 공간에선 북유럽인들의 정서가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더군다나 아테네움 미술관은 생소한 북유럽 작가들의 그림들 위주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름 모를 작가의 그림들을 물 흘러가듯 지나치던 저희는 마음에 드는 작품이 보이면 그 앞에서 쉬어가기로 합의를 보았지요. 친구는 고흐나 고갱 같은 유명한 화가의 작품 앞에 앉아있겠다며, 먼저 정착했습니다. 저도 그를 따라 앉았을 수도 있겠지만 괜한 오기가 생겨 이왕 오게 된 거 조금 더 둘러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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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마주친 위리외 사리넨 ‘resting hour’ © 오은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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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 장면들과 목가적인 풍경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초상화를 지나 저의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이국의 해변과 필터링 없이 그려진 사람들의 나체였어요. 그건 위리외 사리넨의 ‘resting hour’ 였습니다. 시린 겨울의 한복판에서 이토록 뜨거운 여름을 마주하다니.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맞닥뜨린 순간,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낯선 언어로 적혀있던 캡션은 해석할 수 없었고, 어떠한 정보도 없이 그림을 감상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그림은 별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죠. 작열하는 햇빛이 닿아 익어가고 있는 이들과 쉴 새 없이 출렁이는 바다를 보며 온몸으로 느끼는 일. 그거면 충분하다는 듯, 그림은 저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나를 뒤흔드는 작품 앞에 서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공간을 초월하곤 합니다. 그전까지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었던 화가의 그림은 미술관에서 보았던 여느 바다 중 제일 낯설고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이제껏 미술관에 갈 때마다 저는 제가 발견한 몇 가지 단서만으로 그림을 해석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곤 했는데요. 그 작품 앞에 멈춰있는 동안, 좀처럼 겪어보지 못한 강렬한 감각에 의해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잊고 말았습니다. 분명 미술관 바깥에는 매서운 칼바람이 불고 있을 텐데, 더위에 압도당한 사람처럼 목이 마르다는 생각 외엔 아무런 감상도 들지 않았죠. 목덜미를 타고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훔치며 턱 끝까지 올렸던 패딩의 지퍼를 슬금슬금 내렸던 것도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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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가장 잔잔했던 바다
바다를 대하는 태도는 두 부류로 나뉩니다. 저는 그 안으로 뛰어들기보단 곁에 우두커니 앉아 수평선을 감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여행을 다니다 보면 저와 같은 자세를 취한 사람들에게 저절로 눈길이 갑니다. 말없이 풍경에 파묻힌 사람들은 벤치 등받이나 나무에 삐딱하게 기대어 몸을 웅크리거나, 시선을 아예 멀리 두어 수평선을 보다 가끔은 감탄사 같은 혼잣말을 뱉고, 더러 핸드폰을 꺼내 사진으로 담거나 뭔가를 적기도 합니다. 바다와 거리를 두고 각자에게 할당된 풍경과 시간에 몰두한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이들이 어떻게 그곳으로 찾아오게 된 건지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발치로 밀려오는 파랑에 어떤 마음들을 실어 보내고 있을지 가늠해보곤 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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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 Ji-hyun, 「끝과 시작 The End and The Beginn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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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걸린 우지현의 바다를 마주하니 언젠가 보았던 잔잔한 물결과 사람들이 만들어낸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작품 속 바다는 어쩐지 아득해 보였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감상하고자 한 뼘 더 다가서자 이전과는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카메라의 초점을 바꾸듯 시선을 대양에서 그 앞에 있는 사람에게로 자연스럽게 옮겼습니다. 인물들은 손에 닿지 않는 파도를 갈망하거나 그곳으로 달려들 생각이 크게 없어 보였습니다.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듯, 저만치 흐르고 있는 물결과 자신을 분리한 채로 풍경을 지켜보았지요. 그렇게 몰입한 순간 이상한 일이 펼쳐졌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프레임 너머에 있던 해변이 좀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 인물이 서 있던 지점에서 장면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죠. 그제야 그림 속 사람들이 왜 그곳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어떤 감정을 다독이려 바다에 갔지만, 상념에 빠져 정작 바다를 잊게 되는 날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바다는 늘 곁을 지켰습니다. 언제든 모든 이야기들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묵묵하게 머물러있었죠. “바다와 마주하고 있으면 생각이 멈춘다. 거대한 바다 앞에서는 온갖 고뇌와 번민, 후회가 다 부질없어진다. 그래서 방황하는 이들은 오늘도 바다를 찾는다.” 우지현의 저서 <더 포스터 북>에 수록된 이 문장을 그가 그려낸 수평선을 보며 실감했습니다.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는 동안, 내면에 일고 있던 것들이 점차 잦아들고 어느새 그림 속 수평선처럼 균형을 되찾았습니다. 잠깐의 여행을 끝낸 뒤엔, 가뿐해진 기분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지요.
여유를 되찾고 싶은 날이면 탁 트인 바다로 떠나고 싶은 충동이 입니다. 그러나 훌쩍 떠나기엔 바다는 다소 멀리 있어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죠. 그럴 때마다 저는 미술관에 갑니다. 혹시라도 우연히 프레임 너머로 넘실거리는 물결을 만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파도 위를 떠다니듯 작품과 혼연일체 되어 감상할지, 아니면 수평선을 관망하듯 앉아 사색에 빠지게 될진 가봐야 알겠죠. 아무렴 어때요. 내 마음을 일렁이게 만들거나 흠뻑 적셔버릴 작품을 만나게 된다면 감동에 온몸을 내맡긴 채로 유영할 준비가 되어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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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지현의 바다'에 남겨두고 온 이야기
우지현 작가는 푸른 바다를 담은 작업을 펼칩니다. 그 그림 속 바다를 보며 조금은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을 애정하는 사람들이 우지현의 그림 속 바다에 모여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다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하고요. 이러한 상상을 토대로, 그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우지현의 바다’에 초대해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바다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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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오은재 DESIGNER 제민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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