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시선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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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만난 ( 시선 )
은재: 혜림님은 미술관에서 시선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몇 편의 시리즈를 발행하며, 사람들이 미술관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어요. 어쩜 그렇게 다들 열려있지? 모두들 그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저마다의 풍경을 보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특히 림님이 작성한 편지를 읽고선 ‘림님에게 미술관이란 광장이나 다름없구나’ 싶었어요. 작품 외에도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시선을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모든 대화의 시작은 눈길이 오가는 것에서 출발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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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아테네움 미술관에서 마주한 헬렌 쉐르백의 시선 © 오은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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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재: 미술관에 가면 철저히 고립되어 작품만 감상하는 저로서는 이와 같은 낌새를 알아챌 겨를이 없어요. 그런 저를 붙잡았던 어떤 이의 눈빛이 기억나요. 헬싱키 아테네움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감상하던 중 뒤에서 누군가 빤히 보는 듯한 기분에 고개를 돌려봤죠. 시선의 끝엔, 그림 속 여자 한 명이 앉아있었어요. 그때서야 저는 우리가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그들 또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인지하게 되었죠. 여자는 어딘가 망연한 눈빛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막상 가까이 다가가 보니 시선이 묘하게 어긋나있더라고요. 절 보다가 고개를 돌린 것처럼요. 아니 애초에 절 보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겠죠. 상대를 정확히 조준하지 않고 곁눈질하는 듯한 두 눈을 보니 어쩐지 제게 말을 거는 듯했어요.
그것이 헬렌 쉐르벡의 작품이었고, 그가 50살에 그린 자화상이란 건 후에 알게 된 사실이에요. 그의 일대기를 이야기하는 글마다 꼭 언급되는 세 가지 단어가 있어요. 가난, 여성, 장애. 유년 시절, 계단을 내려오다 넘어져 다리를 절게 된 헬렌은 홈스쿨링을 하며 그림을 배우게 됩니다. 일찍부터 재능을 발견한 헬렌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게 되고, 권위있는 상을 휩쓸며 입지를 다집니다. 그 즈음의 그림들은 모두 가난과 질병, 전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누가 봐도 빼어난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화가가 그릴법한 주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질타를 받았다고 해요. 헬렌은 삶 대부분을 꼬리표처럼 따라온 수식과 부당함에 대해 부딪히고, 저항하고, 도피해야만 했어요. 그 끝에서 마주한 것은 결국 자신의 얼굴이었죠. 중년이 되어 건강상의 이유와 내전으로 인해 거처를 옮기고 피난민 생활을 하며 그는 본격적으로 얼굴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그 시기에 그려진 자화상들은 화풍부터 신체, 그리고 감정의 변화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혜림: 어쩌면 그가 우리에게 익숙한 자화상의 껍질을 벗겨냈기 때문에 은재님이 그림의 시선을 느낄 수 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자화상은 화가가 스스로 보이길 원하는 이미지를 담은 것이죠. 붓을 들고 진지한 표정을 한 모습, 영웅적 분위기. 물론 이건 남성 화가에 해당되는 말이고 여성 화가가 자신을 그린 모습은 달랐어요.
사실 여성 화가의 자화상은 그 자체로 연구 대상이에요. 미술사적으로 주류 화가는 언제나 남성이었으니까요.[1] 게다가,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의 저자 존 버거는 전통적 회화에서 남성은 보는 주체, 여성은 보이는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여성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조차 ‘남성의 시선’이라 이야기하기도 했고요. 그러니 여성 화가들은 자화상을 그릴 때, 남성이 마련한 이미지의 문법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어요. 그림 속 자신은 ‘내가 보는 나’가 아니라 ‘보여지는 나’였던 거예요.
다시 헬렌 쉐르벡의 자화상으로 돌아와 볼까요. 그림 속 여자는 어두운 배경과 불안한 눈빛 때문에 위태로워 보여요. 막 몸을 돌리려는 포즈, 정면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는 눈동자는 이 장면을 더 실감 나고 생생하게 만들어주고요. 작가가 전쟁을 겪었으니 시끄러운 전쟁 속에서 끔찍한 장면을 발견한 본인을 그런 것 같네요. 전형적으로 아름답게 그려지거나, 교양을 갖춘 조신한 모습이 아니라는 건 분명해요. 물론 처음부터 그녀가 남성의 시선에서 벗어났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젊은 시절에 남긴 자화상은 아주 익숙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거든요. 그녀도 세월을 거치며 조금씩 미화를 지우고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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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Helene Schjerfbeck,Self-portrait, 1912 © Yehia Eweis.
(우) Helene Schjerfbeck,Self-Portrait with Red Spot, 1944 © Finnish National Gallery, Hannu Aalton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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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재: 제가 어렴풋하게 느낀 지점에 대해 림님이 차근차근 짚어주었네요. 조금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려 했다’는 마지막 문장을 찬찬히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겼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자기 모습을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요? 림님에게 눈을 감고서 본인 얼굴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어떤 모습을 떠올릴지도 궁금하네요.
저는 사람들이 자신의 뒷모습만큼이나 앞모습을 잘 모른다고 생각해요. 누구의 시선도 개입되지 않은 진정한 자기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유체 이탈을 하지 않고서야(?) 아예 불가능한 것일지도 몰라요. 그러나 제가 마주친 그림 속 헬렌은 본인을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 같았어요. 수년간 자신의 모습을 그렸으니 그럴 만도 해요. 그의 자화상 중 오래오래 회자되는 작품들은 대부분 50살 이후에 완성된 것들이에요. 묘사와 구상에 치중했던 초창기 자화상에 비해 어느 시점부터 헬렌은 그늘지고 핏기 없는 얼굴을 담았어요. 말년으로 갈수록, 자신의 얼굴을 뭉개버리기에 이르러요. 이전과 달리 늙고, 병들고, 나약해진 헬렌은 얼굴에 서려있는 죽음을 가감없이 드러냅니다. 그래서일까요. 형체 없이 녹아버린 무채색의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투명했죠.
헬렌은 어째서 말년의 자신을 그렇게 표현하게 된 걸까요? 단지 그의 화풍이 달라져서일까요? 그보다는 헬렌이 본인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변화한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인생의 어느 시점 이후부터, 헬렌은 한정된 공간에 은신하며 그림을 그렸어요. 거울을 들여다보며 하루하루 늙어가고, 병약해지는 자신을 관찰하고 이를 열심히 화폭에 옮겼죠. 어떤 이들은 그 시기 즈음의 작품들을 보며, ‘자기방어적 회피’에 가깝다고 이야기하며 질타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만약 헬렌이 진정 자기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기를 원했다면, 과연 그 그림을 그렸을까요? 아마 캔버스 앞에 서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는 병마로 인해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스러져가는 육신과 혼을 담아냈습니다. 그즈음 그에게 고통이란, 또 다른 자신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죽음과 합일된 채로 타인의 시선 바깥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았을 그. 토해내듯 펼쳐낸 담대한 선들을 보며, 저는 기묘한 자유를 맛보았어요. 지워진 얼굴에선 용기가 느껴졌어요. 어쩌면 헬렌은 평생 화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자신에게 악수를 청하고자 그림을 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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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Cindy Sherman, Untitled Fil Still #7. 1978 (우) Cindy Sherman, Untitled Fil Still #21. 1978 © MO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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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림: 맞아요. 그림 속 얼굴은 뭉그러져 있지만 작가의 시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진 것 같아요.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은 힘들잖아요. 그 모습이 볼품없을 수 있으니까요.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발견한 모습을 가감 없이 표현한 헬렌이 정말 대단해요. 헬렌이 스스로를 잘 들여다보는 사람이었다면, 저는 매체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재현되는지 제대로 포착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타인에게 (특히, 대중매체에서)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가’를 관찰하고 그 시선을 선명하게 드러내 문제점을 꼬집은 작가예요.
미국의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신디 셔먼은 1977년 《무제 사진 스틸》 시리즈 작업으로 대중매체 속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을 재현했어요. 70여 장의 흑백 사진 속에서 셔먼은 사진 속에 자신을 등장시키죠. 선글라스를 끼고 테라스 문을 열어젖힌 채 의심스러운 태도로 바깥을 바라보는 여성의 모습, 시끌벅적한 뉴욕 거리에서 누군가를 피해 달아나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 불신의 눈초리로 뒤를 돌아보는 표정. 과도하게 치장한 모습들. 모두 어디선가 많이 봤던, 아니 어쩌면 너무 자주 봐서 익숙해진 영화의 한 장면 같아요. 이렇게 셔먼은 영화나 포르노, 광고에서 여성이 어떻게 재현되고 소비되는지 보여줬어요. 즉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상을 본인의 몸으로 재현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강조한 것이죠.[2]
헬렌 쉐르벡이 긴 시간에 걸쳐 누구의 시선도 개입되지 않은 진정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캔버스에 그려낸 화가라면, 신디 셔먼은 타인의 시선을 인지하고 그것을 사진 매체에 그대로 드러낸 작가라 할 수 있겠네요. 처음 신디 셔먼의 사진을 봤을 때 모든 장면이 익숙한 스스로가 충격적이었어요. 매체 속 여성의 재현을 비판 없이 소비하고 있는 저를 이제라도 발견해 다행이었죠. 바깥에서 전해오는 시선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힘을 키우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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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재: 두 사람의 작업을 경유하고 나니 우리가 얼마나 무수한 시선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어요. 우리는 스스로를 정의 내릴 때, 남들의 시선에 어느 정도 의지하곤 해요. 그러나 어쩌면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일은, 그 바깥으로 벗어나고자 할 때 시작되는 것일지도 몰라요.
당시에는 그림 속 여자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유추할 수조차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와 눈빛을 주고 받고 싶었어요. 절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만 같던 그림 속 여자 앞에 머무른 그때, 묘하게 빗겨나간 두 눈에 시선을 맞춘 순간. 그제야 무언가를 왜곡 없이 바라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만 같았어요. 그 찰나만큼은 그 그림 속 헬렌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니까요.
혜림: 헬렌 쉐르벡, 신디 셔먼 그리고 그림 앞의 은재님처럼,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타인에게 너무 많은 마음을 쏟고, 바깥의 시선을 안으로 가져와 자신을 괴롭히던 시기였죠. 그때 진정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고민하면서 잠깐 저로부터 멀리 떨어져 보았어요. 제 나약한 부분이 보였고, 그 와중에도 절 지탱하는 것, 정말로 ‘나로부터’ 시작된 것은 무엇인지 살펴 솔직하게 기록했죠.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 시간을 거치니 조금은 단단해진 느낌이었어요. 종종 이런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는 그걸 자꾸 까먹지요. 오늘은 헬렌과 은재님의 덕분에 다시 저를 마주할 용기가 생겼어요. 고맙습니다.
은재님, 여행 중이라 들었어요. 낯선 곳에서 매일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게 되겠지요. 그런 점에 있어서 여행은 자신과의 거리를 유지하기에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부디 은재님이 현재의 수많은 시선과 그림자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를 지켜보고 아끼는 시간을 보내길 바라요. 다녀와서 은재님의 시선을 또 공유해주세요. 어떤 방식이든, 어디서든, 항상 기다리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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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재 Eunjae OH
프린트베이커리 에디터. 목표가 뭐예요? 물으면, '성덕'이라고 대답할 만큼 좋아하는 것이 많다. 미술과도 좀 친해지고 싶은데 주변을 빙빙 맴돌며 말 건넬 틈만 노리고 있다. 전생에 개가 아니었나...싶을 정도로 목적 없이 걷는 걸 즐긴다. 글도 산책하듯 쓰려고 하지만 매번 헤매다 울면서 돌아온다. 그럼에도, '진심을 다해 나아가다 보면 어디라도 도착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일단 한 발짝 걸음을 옮겨본다.
전혜림 Hyelim CHUN
프린트베이커리 에디터. 예술이 나와 세상 사이에 있는 울타리를 넓혀줄 수 있다고 믿는다. 미술, 건축, 영화가 선물하는 타인의 시선을 잘 소화해 세상을 이해하고 나아가 '나'를 잘 알고 싶다. 같은 맥락으로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한다. 게다가 듣고 소화시킨 생각은 꼭 바깥에 풀어놓아야 하는 성격이라 말이 많다. 에디터도 그래서 하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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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더 드립니다! 대신 궁금한게 있어요..
‘P.S 미술관에서 만난 ( )’ 시리즈 잘 받아보셨나요? 총 일곱 편의 글을 지나오며, 여러분이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해요. 의견 남겨주실래요? 감사한 마음을 담아 다섯 분께 1만 9천원 상당의 도서, ‘불편한 시선’을 증정해드립니다. 해당 도서는 이번 편지에도 인용되었어요. 미술관에서 만난 여성들, 그들과 얽힌 불편한 시선을 쉽게 이야기해 주어 유익하고 재밌습니다. 좋은 책을 무료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한가지 소식을 더 전해드려요. ‘P.S 미술관에서 만난 ( )’이 끝나서 아쉬웠던 여러분을 위해 두 개의 이야기를 더 준비했습니다. 두 사람은 미술관에서 무엇을 마주했을지, 기대해주세요.
- 타국의 신선한 공기를 담아 솔직한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 '유지혜'
- 농담같은 진심을 이야기하는 '양다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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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트베이커리 온라인 스토어 속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보세요. 캔버스 위에 두터운 유화 물감의 획으로 자신만의 발자취를 남겨온 신보라, 푸른 바다와 뒷모습의 이야기를 담는 우지현. 선물하기 좋은 귀여운 손정민의 오브제, 포스터로 재탄생한 김호정의 푸른 도자. 모두 온라인 스토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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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오은재, 전혜림 DESIGNER 이혜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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